몽골의 바람
2018년 5월 19일
국경을 넘는다.
육로로 연결되는 국경인데 자전거로는 넘을 수 없고 반드시 버스나 지프를 타야된다. 나는 버스를 탔다.
자전거와 분해한 짐들을 옮기느라 늦으면 버스에 탄 사람들이 전부 기다려야 된다.
가방 탈부착이 쉬운 오르트립 셋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저번에 만났던 자전거 단체관광객들은 전세 버스를 타고 왔다. 자전거와 짐들도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부럽다.
여기서 타프를 세울 때 쓰던 폴대를 잃어버렸다.
Zamiin-Uud에서부터 울란바토르까지 이제는 포장도로가 완전히 연결됐다고 한다.
그런데 예전 길로 들어온 것 같다.
뭔가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
바퀴자국을 따라서 모래밭을 건넜더니 새로 난 말끔한 도로가 나타난다.
자전거 단체관광객들은 짐도 없는 가벼운 자전거를 타고 이미 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온 친구랑 잠시동안 같이 달리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무사히 이스탄불까지 도착했기를!
사실 이전 포스트에서도 살짝 언급했었는데,
나는 텐트가 없다. ㅋㅋㅋㅋㅋㅋ
타프랑 해먹 뿐인데 이걸 제대로 치려면 나무나 뭔가 매달게 있어야 된다.
그런데 나무가 없네?
하지만 나도 적응해 가고 있다.
솔직히 이번꺼 잘 친 듯
2018년 5월 20일
아침에 한 목동이 와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런데서 자면 위험하다고 하는건지, 여기서 자면 안된다고 하는건지, 똥이 마렵다고 하는건지…
보통은 뉘앙스나 제스쳐 같은걸로 아 그런 의미인가보다 하는데, 이 분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낙타 하이!
Zamiin-Uud에서 Sainshand까지 거의 200km거리 중간에 단 하나 있던 마트겸 가정집이다.
할아버지께서 컵라면에 양고기를 몇 점 넣어주셨는데, 너무 맛있었다.
아이들은 자전거 한 번 타봐도 되겠냐고 말해서 타게 해줬다.
생각보다 무거웠는지 휘청휘청하다가 곧 잘 탄다.
가끔 트럭들을 만나면 기사분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Sainshand 도착.
그런데 도시 전체가 정전이다.
여기서 헤드램프를 켜고 호쇼르를 먹었다.
다른 음식은 정전이라 안된단다.
불도 다 꺼졌는데 어쩐지 아이들은 더 신이 난 것 같았다.
마트 안.
완전히 어두워진 다음에도 아이들은 공원에 남아서 괴성을 지르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2018년 5월 21일
날씨가 심상치 않다.
Sainshand 시내를 나서는데 자전거 단체여행객들과 마추졌다.
바람이 심해서 자기들은 오늘 시내 구경이나 하고 다음날 출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어야 했다.
Sainshand 경계에 있는 곳에 결국 들어왔다.
이 날 5km 정도 갔나? gpx보면 나올텐데.
겨우 이거 가는데 정말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평지에서도 자전거를 탈 수가 없어서 끌바를 했다.
이번 여행 통틀어서 바람이 가장 센 날이었다.
2018년 5월 22일
이 날 하루를 요약하는 사진.
맞바람에 맞서서 죽어라 패달을 돌린 것 밖에는 기억에 없다.
사진도 찍은게 없다.
도저히 캠핑을 할 수가 없어서 한 마을에 들어갔다.
농구장에서 캠핑을 해도 되냐고 물어보자 건물의 빈 방을 빌려주셨다.
이렇게 고기도 주셨다.
감사합니다 ㅠㅠ
2018년 5월 23일
하룻밤을 보낸 방
자전거
아침에 아무도 안 보이길래 인기척이 느껴지는 옆 집에 가서 노크를 문을 열었다.
집 안은 무슨 회의실이었고 십수명이 앉아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하고 재빨리 문을 닫았다. 높으신 분도 있던 것 같았는데…
일반적인 마을이 아니라 철도청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 같았다.
Airag 도착.
이른 시간이지만 좀 쉬려고 한다.
아기자기하고
이쁘다.
학교
2018년 5월 24일
적절한 때에 나타나준 화장실.
이 날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울라바토르까지 태워준다고 작은 트럭 한 대가 멈춰섰다.
아저씨 둘이 동생들이 아니었을까? 타고 있었는데 약간의 영어가 가능했다.
나: “괜찮습니다. 울란바토르까지는 제 힘으로 가고 싶습니다. 바람도 곧 약해지지 않을까요?”
몽골인: “아닙니다, 솔롱고스. 당신은 초원을 모릅니다. (사이) 이 바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많은 의역이 포함돼 있습니다
진짜 계속 부나 이 바람?
불행하다.
아무도 없어서 다른 곳으로 갔다.
2018년 5월 25일
날씨가 좋지 않을 것 같아 하루 쉬어 가기로 했다.
가끔은 맛있는 것도 먹어야지.
몽골에서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깨진 술병 조각이 많다.
몽골은 술이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러시아보다 많이 마신단다.
초원에서 몇 주 바람 맞으면 왜 그러는지 알 수 있다.
2018년 5월 26일
빈 건물 뒤에서 바람을 피하는 중.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전봇대 근처는 몽골 초원에서 타프를 치기 가장 좋은 곳이다.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들.
2018년 5월 27일
일어나서 바로 한 컷.
타프의 장점은 밖이 그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나도 잘 보인다.
프라이버시란 없다.
2018년 5월 28일
울란바토르 진입 전에 언덕들이 좀 있다.
이제서야 맞바람도 조금씩 약해져 갔다.
울란바토르
뒤에 학생들도 인사를 해주네.
울란바토르에 진입하기 전까지 맞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풍속은 높지 않은 것 같은데 풍압이 높다고 해야하나?
물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느낌이다.
Sainshand를 출발한 이래 시속 10km를 넘은 적이 없다. 하루의 대부분은 시속 6km~7km 사이에서 달려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바람을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중간에 어쩌다가 건물이나 담장같은게 나오면 무조건 바람을 피하러 갔다.
이렇게 바람을 맞으면 우울증이 온다는걸 경험했다.
귀에 스치는 바람이 내는 소음과 피부에 바람이 주는 자극에 하루종일 며칠동안 노출되면 진짜 미칠 것 같다.
고문같다.
한 번은 자전거를 도로 밖으로 내동댕이 쳐버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